누려야 비로소 풍요로워 진다.

Henri Cartier-Bresson (French, 1908–2004)

Henri Cartier-Bresson (French, 1908–2004)

모멘텀은 물리학에서 가속도를 뜻하는 말이다. 또한 경제학에서 주식 성장률 예측을 위한 지표로 사용된다. 한국의 압축성장과 경제발전 가속화는 우리가 모멘텀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는 대부분의 산업사회는 끈임없는 성장을 추구한다. 유럽사회는 18세기 말 산업혁명을 계기로, 200년간 그간 인류사에 볼수 없던 급진적 경제발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발전은 유럽과 큰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 60년대 부터 90년대를 거치면서 유럽이 순차적으로 이루어 놓은 경제 발전을 불과 40년 만에 압축성장을 이룬 것이다. 한국의 압축성장은 산업사회의 가속화를 가져왔다.

석기시대를 지나 수만년의 인류의 역사는 단조로운 일상의 연속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느리게만 발달하던 인류가 불과 200년이라는 시간동안에 급진적인 성장을 보였다. 자동차의 발달로 우리는 걸어서 한달이 걸릴 거리를 불과 하루만에 주파한다. 30일 걸려 이동할 거리를 불과 하루만에 이동했으니 우리에게는 29일이라는 잉여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더 바빠졌다. 아침 출근길에 차에 올라타, 드라이브 쓰루(Drive Thru)패스트 푸드점에 들려 출근과 아침식사를 동시에 해결한다. 산업사회가 수렵, 농경시대에는 없었던 멀티테스킹을 인류에게 요구하는 것이다. 수렵시대에는 낚시를 하고 먹는 행위 자체가 일상이자 일(Task)의 전부였다. 하지만 모멘텀의 시대에는 잉여시간이 생기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고, 잉여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자본주의 시장에서 도태된다고 여겨진다. 이와같은 위협의식은 현대인의 삶을 더욱 바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급격한 모멘텀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는 경제성장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LCD 세계 생산 1위, 플래시 메모리 점유률 세계 1위와 같은 수식어는 한국사회가 세계시장에서 얼마나 높은 위상을 보이고 있는지 말해준다. 하지만 유럽이 200년간 이루어 놓은 성장을 불과 30년만에 이루었다는 성취감 뒤에 그늘이 있다. 유럽의 성장은 18세기 말부터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기술의 혁신을 통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유럽시장의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발전은, 한국에게 세계 1위라는 수식어를 언젠가는 위협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위협이라는 채찍을 맞으며 달리는 멍든 말과 같다.

위협이 과거로의 퇴보나 빈곤을 의미하지 않는다. 경제학에서 모멘텀은 어느 시기에 정점을 맞이하게 된다. 정점은 하양곡선을 그릴 수도 있고, 평탄한 평행곡선을 그릴 수도 있다. 또한 하향곡선이나 평행곡선이 퇴보나 빈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두곡선은 다음세대에게 성장가능성을 의미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경제성장이 자식세대에게 까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베이비붐 세대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자식세대에게 부추기고 있다. 개그콘서트에서 ‘누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어느날 갑자기 졸부가 된 가족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느낀 괴리감을 희화하여 보여준다. 갑작스런 경제성장은 우리에게 조급증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경제와 문명의 발전을 누리지 못하고, 베이비 붐 세대의 모멘텀 DNA를 몸이 기억하고 있다. 압축성장은 우리에게 풍요속 빈곤을 가져다 주었다.

분명 이 정도 벌었으면 이제는 누릴 시기이다. 프랑스는 경제 성장 이후에 주 5일 근무가 활성화되었다. 당시 파리시민들이 거리로 흘러나와 공원에서 포도주와 함께 망중한을 즐기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은 국가 경제 성장 이후 국민이 풍요를 누리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 문명과 경제성장의 모멘텀은 곧 최대 정점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다음세대에게 하향곡선보다는 평행곡선을 선물하고 싶다. 그에대한 대비책은 성장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물려주는 것이다. 즉 프랑스가 그랬던 것 처럼 우리는 누려야 비로소 풍요로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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