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지울수록 의미는 또렷해진다
발터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카메라맨을 외과의사에 비유하였다. 카메라맨은 눈앞에 펼쳐진 사실을 프레이밍(Framing)이라는 매스를 이용해 예리하게 도려낸다. 영상물의 사실 전달을 위해서 우리는 프레임 밖의 이야기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사실 전달의 명료성을 위하여 배경의 혼란스러운 이미지들의 가지를 쳐낸다. 편집도 이와 마찬가지로 제작자가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가 되는 영상을 2차적으로 가지치기하는 행위이다.
영상물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다. 장르에 따라 다양한 편집기법이 사용되고, 그 편집에 의해 장르의 구분이 쉽다. 고발성 다큐멘터리의 경우 거친 편집(Rough cut)을 통하여 이야기 전후의 주변 상황을 예측 가능하게 해준다. 주변 상황이 더 많이 개입되는 이러한 편집 방식은 시청자의 주관에 따라 사실 여부 판단이 가능하다. 반면 극영화나 TV 드라마의 정교한 편집방식은 허구의 이야기를 시청자가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 필요 없는 부분을 잘라냄으로써 가상의 이야기를 제작자가 의도한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게 해준다. 영상물에 편집은 장르적 특성을 구분해 주고, 사실 전달의 명료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영상물은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영상은 유력자들의 이미지 조작 수단으로 이용됐다. 선전(Propaganda)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선전은 기존의 사실을 병렬배치하는 편집을 통하여 사실을 왜곡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령 A 이미지와 B 이미지는 분명 진실이다. 하지만 두 진실된 이미지의 충돌로 인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영화 헝거게임에서는 억압받는 구역 출신의 영웅의 모습과 억압받는 구역의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모습, 노동교화 당하는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이로 인하여 유력자를 따르면 구원은 있지만 거역할 시에는 그에 따른 처벌이 가해질 것이라는 의미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또한, 억압받는 구역 출신의 영웅의 영상을 그 사이에 삽입(인서트편집)하는 것은 유력자의 폭정을 감쇄시킴을 의미한다.
영상물에서 편집은 진실의 명료성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또한 이를 이용하여 진실을 왜곡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편집의 유무는 진실성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는 편집이 없는 중계방송이나 롱테이크 영상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극영화나 MNG에서 사용되는 롱테이크 촬영방식은 카메라맨이 레코딩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모든 상황을 여실히 보게 된다. 카메라맨은 리허설을 통하여 동기가 있는 움직임에 의하여 프레이밍을 하고, 촬영의 주가 되는 피사체와 배경을 번갈아가면서 보여주게 된다. 이와 같은 편집은 시청자가 마치 그 현장에 있는 듯한 몰입감을 가져다주고, 동시간대에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즉 편집은 영상제작의 일련의 과정 중에 하나일 뿐이다. 영상물에서 진실은 제작자의 의도에 담겨있다. 내가 진실을 전달하고 싶으면 편집을 진실전달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왜곡하고 싶다면 편집은 진실 왜곡의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다.
BBC의 심야방송에서 시작을 알리는 배경음악 제작에 한밤중 느낌의 오디오가 필요했다. 오디오 감독은 런던 시내의 소리를 녹음하여 스튜디오에서 틀었다. 녹음된 소리에는 차의 경적소리, 사람의 웅성거림 때문에 한밤 중의 느낌보다는 바쁜 거리의 느낌이 강했다고 한다. 그래서 한적한 런던의 골목에서 다시 녹음했고, 그때야 제작자로부터 밤 느낌이 난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오디오가 그렇듯이 영상물도 주변의 노이즈를 지워야 진실이 명료해진다. 영상물에서 프레이밍과 편집은 의미가 없는 부분을 지워나가는 수단이다. 하지만 본래의 의미를 지워 새로운 의미를 탄생시킬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의미를 지울수록 의미는 또렷해진다.’ 그 지워진 의미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즉 영상물에서 진실은 편집의 여부가 아닌, 제작자의 진실성에 기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