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는 굿이다. ‘영화 만신과 매체의 갈등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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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만신(무당을 높여 이르는 말) 김금화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갈등에 휩싸였다. 남자아이가 태어나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어머니는 갖난 김금화를 죽이라고 하였다. 생과 사, 불가항력의 영역에서조차 사람은 갈등을 가지게 된다. 사회에서 깊은 갈등의 골은 개인에게 한(恨)이라는 형태로 강박적인 마음의 상처를 남기게 된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개인의 삶에 한을 서리게 한 비극적 사건들이 있다. 6.25전쟁은 한민족이었던 한반도에 이산가족이라는 현실을 만들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시민항쟁에 군병력 투입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갈등으로 인한 비극적 사건은 개인에게 평생 씻을 수 없는 한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게 한다.

 

매체는 굿이다.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매체(Medium)는 불가항력(Act of God)과 가항력의 사이를 이어주는 영매로서의 역할을 의미한다. 초기의 무성영화를 처음 본 노인은 지인들에게 굿을 보고 왔다고 자랑을 했다. 과거 굿은 갈등 풀어가는 매체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픽션이나 논픽션의 영화를 보면 항상 갈등이 존재한다.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볼때, 사회 전반의 갈등은 우성과 열성의 충돌을 통하여 사회의 DNA를 발전시켜나가는 역할을 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실현하는 윤리적 행위를 통하여 다수가 아닌 어느 한 개인에게는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서론에서 언급한 두 사건은 죽음 혹은 생이별로 개인에게 애간장 녹는 한으로 남게 된다. 이처럼 사회적, 이념적 갈등은 분쟁조정을 통하여 해결하게 된다. 하지만 분쟁조정 이후의 개인에게 남아있을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 영매, 즉 매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개인에게 크나큰 비극이자 한으로 남게 될 세월호 참사는 사회적 갈등과 피해자와 언론사 간의 갈등을 초래하였다. 고발뉴스 이상호기자의 다이빙벨은 희망과 같이 우리의 귀에 들려왔고 생존자를 구해줄 슈퍼히어로의 의미로 다가왔다. 하지만 뉴스에 키워드였던 다이빙벨은 시간이 지날 수록 피해자들에게 희망고문만 안겨주었다. 김어준의 KFC에서 심도있게 다룬 진도TVS관련 보도는 모든 사건이 마치 그곳에서 시작된 것처럼 들려왔다. 순간의 카타르시스에 불과했다. 무당이 작두에 올라서고 돼지의 사체를 뒤집어쓰고 강한 충격을 관객에게 보여줌으로써 비극을 억누르게 된다. 즉 선무당이 카타르시스를 통하여 일시적 정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다. 어설픈 매체가 순간적 정화법을 통해 비극을 잠시 덮어 두는 것은 단지 시청률에 연연하는 흥미 위주의 뉴스에 지나지 않는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 곳에는 으레 언론이 몰려든다. 가항력이던 불가항력이던 재난에 대해서 사람들은 엄청난 호기심을 보인다. 사람들이 그토록 사건에 관심을 갖는 것은 고통스러운 장면을 보면서 자신들이 재앙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보다 강력하게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들이 나는 저 곳(there)에 있지 않고 이곳에 있다는 이유이다. 또 다른 이유는 모든 사건을 언론을 통하여 접할 때 불가항력적 특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즉 남의 일이 되는 것이다. 강력한 보도는 사회적으로 메시지를 전해주는가?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주는가? 매체 비평가 수전 손택은 강력하고 도식화된 뉴스들로 포화상태인 매체환경 속에서 강력한 보도가 영향력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손을 써볼 도리가 없는 사건의 적나라한 재난보도는 오히려 충격을 주어 시청자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1974년 TV문학관에 소개된 만신 김금화는 태어나면서 부터 남아선호사상의 갈등에 휩싸였다. 몸은 병약해 시집살이에서 쫓겨나 한을 가슴에 맸고, 6.25전쟁 중 월남하여 사건의 중심에서 살아왔다. 이처럼 비극을 몸소 겪어본 사람이다. 김금화의 굿을 보면 그곳에서 매체(Medium)의 역할을 알 수 있다. 사건을 비극으로 비추는 단발성 뉴스는 마치 선무당의 굿에서 일시적인 카타르시스(배설)를 느끼는 것과 같다. 즉 갈등 이후에 개인에게 남아있을 한을 풀어주진 못한다. 만신 김금화는 ‘가항력과 불가항력 사이를 매개하고 화해를 청하는 책임의 고통을 떠안고 가는 것이 만신의 고통’이라고 말한다. 언론 역시 더러운 것, 힘든 것을 어루만져 주고 화합을 유도하며 가슴에 맺힌 것들이 한없이 풀어지도록 해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언론은 하나의 사건을 보도하면서 김금화가 말한 ‘만신의 고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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