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에서 ‘스낵컬처’ 까지, 갑툭튀

PAM1996008Z00009/14

문화예술의 고급 콘텐츠는 과거 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이었다. 발터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는 이러한 고고한 예술의 유일무이한 현존성을 아우라(Aura)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문화예술 콘텐츠에 순위를 매길 순 없지만 분명 고고함은 존재한다. 귀족사회의 예술품이 대중에게 널리 전파되어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된 사례들이 있다. 그리고 반대로 길거리의 저급 키치 예술이 박물관에 전시되는 현상이 현대에 나타났다. 하나의 문화적 코드의 발생과 지휘는 창조의 혼란만큼이나 예측하기 힘들다.

귀족사회의 초상화는 가진 자의 권력, 부와 명예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의 초상화를 가질 수 있다는 자체가 그 사람이 가진 사회적 지휘를 의미하였다. 또한 초상화를 그린이가 유명화가라면 초상화는 하나의 인물화이기 이전에 예술가가 제작한 하나의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하나의 작품이란 원작을 의미하며, 사본이 없다는 말이다. 원본 그림 앞에 선 사람만이 이 문화예술의 고급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으며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이로써 예술가와 예술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증언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시대는 달라졌다. 기술복제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기존의 수공적 복제에서 벗어나, 기술적 복제로 인하여 예술작품은 대중화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장인에 의해서 몇 개만 소규모로 생산되던 에르메스 가방이 어느 날 대중화를 선언한 것이다. 사진이 그렇다. 수공의 복제에서 그나마 유지할 수 있던 아우라가, 대중화로 인하여 예술작품은 길거리 흔한 키치 예술만도 못해진 것이다. 사진이전에 대중이 자신이 복제된 이미지를 가진다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사진 발명이후, 누구나 자신이 복제된 인화지를 가지게 되면서 복제된 이미지의 아우라는 사라졌다.

문화예술 콘텐츠의 기술복제로 인화여 대중화 시대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매체로 변화하였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야 볼 수 있는 유일무이한 모나리자를 서점에 화첩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 베토벤 신화적 인물들의 이야기를 필름의 부활을 통하여 가까운 영화관에서 신분에 상관없이 그들의 음악과 이야기를 사실감 있게 감상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탈신화로 인하여 문화예술 콘텐츠는 대중을 위한 프로파간다(Propaganda)로 그 의미를 변태시킨다. 이를 통하여 대중은 쉽게 계몽되고, 쉽게 소수계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다. 즉 신화적 마력을 잃게 된 대중문화예술은 대중동원을 위한 매개체로 전락한다.

예술작품은 아우라를 잃었다. 그리고 대량복제로 인하여 신화적 요소를 상실했다. 거장들이 말하자고 자 하는 본연의 고고한 가치는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또한 대량복제와 대중화로 인하여 즐길 거리는 더 이상 순수한 의미의 오락 거리가 아니다. 단순히 예술은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즐길 것은 지적 카타르시스를 위해 존재가치가 있다. 문화예술작품이 아무런 가치와 수단으로써의 작품이기를 거부하기 위해서는 휘발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스낵컬쳐이다. 단시간 내에 즐기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휘발성이다. 즉 이것은 가치와 수단이기를 거부한다. 스낵컬처는 단지 두뇌에 전기적 자극인 카타르시스를 남기고, 휘발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흔적을 어디에도 남기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Advertise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