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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형과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다. 서울의 지하철은 몇개의 노선인가..? 시민의 발 지하철. 그형의 말을 빌리자면 지하철은 마치 모세혈관 처럼 서울의 곳곳을 연결해주고 따뜻한 피를 날라주는 서울의 모세혈관과도 같다는 말에 나는 맞장구 쳤다. 음.. 맞아 맞아.

어렸을적 나는 강원도 정선군 예미읍에 2년간 살았다. 국민학교 2학년이였던 나는 가제를 잡으러 다니고, 칼과 성냥을 소지하고 낚시를 하러 다닌 다는 이유와 교육상의 문제로 강원도 동해시로 그나마 번화한 곳으로 이주명령을 아버지께 받았다. 당시 예미에는 슈퍼 하나, 동네 철물점 하나 목욕탕에 갈려면은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 격오지였다. 심지어 학용품과 도시락을 동네 철물점에서 샀던 기억이 난다. 예미에 살던 시절 나는 할머니께서 살고 계신 곳에 충농증 치료 또는 약간의 문화혜택(햄버거 먹기, 영화 관람)을 위하여 방학이면 동해에 할머니 댁에 놀러를 갔다. 9살 나이에 동해에서 예미까지의 여행은 멀고도 험난했다. 하지만 그 문화혜택의 달콤함은 잊을수 없다. 당시 난 불량한 삼촌과 함께 9살 나이에 장군에 아들이라는 영화에서 배드신을 목격하였다! 동해에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난 많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예미에는 버스터미널이 없다. 앞서 말한 예미의 두 가게(철물점과 구멍가게)에서 멀티플랙스의 역할을 하였는데 구멍가게에서 버스표를 팔고 그 앞에서 버스도 탈수 있다. 동해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린 나는 그만. 버스정류장을 지나치고 말았다. 사실 버스가 정류소에 가까워 졌다는 것을 알았지만.. 차마 아저씨~! 새워주세요. 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난 울먹이며 다음 정류장까지 갔다. 다음 정류장의 사정도 예미와 다를 것이 없다. 고한 버스정류장 역시 수퍼에서 버스표를 사는 시스템이였고, 나는 고한 버스정류장의 수퍼에서 공중전화로 어머니를 안심시키는 안부전화를 드리고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울먹임과 용기없는 바보같은 내가 생생이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납치 안 당하고 안부전화 까지 하고 돌아왔으니 그당시는 나름 똑똑했던 것 같다. 시외버스 터미날은 진짜 신기하다. 내가 살던 예미, 그 주변의 고한, 사북, 함백을 모세혈관 처럼 따듯하게 연결해 준다.

내가 이 작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그 형과의 대화에서 사람을 이어주는 모세혈관, 지난 가을 고창의 따뜻했던 버스정류장의 햇살, 강원도 영월에 플라타너스 가득한 길의 내륙의 모세혈관 영월 터미널 그런 느낌들을 모아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록을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알렉스 웹이 맥시코와 미국남부의 국경을 기록하면서 했던 말이 기억난다. “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것을 기록한다.”(정확하지 않다…) 사진이 그렇다. 개념을 통해 단칼에 승부를 볼 수도 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차곡 차곡 쌓인 기록이 언젠가는 윤미네 집처럼 뽀드득 뽀드득한 나의 사진집 “시외 버스터미날”에 서문을 적는 날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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